운전자보험 약관의 아이러니 - 횡단보도가 더 불리하다고?
- miraz0
- 10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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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상처, 다른 보상의 기막힌 현실
운전자보험에 가입할 때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까?
사고가 났을 때 피해자와의 원만한 합의를 위한 든든한 뒷받침을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약관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기막힌 조항들을 발견하게 된 다.
오늘은 이 조항들에 대하여 개략적인 말을 전하고자 한다.
운전자보험에는 교통사고처리지원금이라는 항목이 있다. 이 항목은 피보험자가 교통사고를 일 으켜 형사입건이 된 경우 피해자와 합의를 위하여 지급하는 금액이다. 그런데 이 금액 지급기 준이 일반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경수 손상 환자의 두 가지 운명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어떤 사람이 교통사고로 경수가 손상되어 손가락 저림 증상이 생겼 다. 병원에서는 12주 진단서를 발급했다. 같은 부상, 같은 진단서지만 사고 발생 장소에 따라 보험금이 천지 차이로 달라진다.
12대 중대과실에 해당하는 횡단보도 사고의 경우, 진단주수에 따라 지원금이 결정된다. 12 주 진단서라면 D보험사 약관 기준으로 최대 8천만원이 지급된다.(가입금액 2억원 기준)
만일 무단횡단 중 발생한 일반 교통사고라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경수 손상으로 인 한 신경계 손상은 보통 상해급수가 크게 높지 않다. 하지만, 이 사고에서 상해급수가 1~3급이 라고 가정을 해보자. 그러면, 가입금액이 보장하는 최대치인 2억원이 지급된다. 또한, 만일 원 래대로 상해급수가 낮더라도 피해자가 중상해라는 판정을 받고 가해자가 기소된다면 역시 2억 원 전액이 나온다.
상식과 정반대인 보상 체계
다시 한 번 쉽게 정리해보자.
법규를 준수하며 횡단보도를 건너다 사고를 당한 피해자에게는 최대 8천만원, 무단횡단을 하 다 사고를 당한 피해자에게는 최대 2억원이 지급될 수 있다는 것이다.
횡단보도는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안전장치다. 운전자 입장에서도 횡단보도에서는 더욱 주의깊게 운전해야 한다. 그런데 보험 약관상으로는 오히려 횡단보도 사고가 더 불리하 게 작용한다.
12대 중대과실의 함정
이런 역설이 생기는 이유는 보험회사의 12대 중대과실 분류 때문이다. 횡단보도나 교차로에서 의 사고는 중대과실로 분류되어 진단주수 기준으로만 보상이 이뤄진다. 반면 일반 도로에서의 사고는 상해 정도나 기소 여부에 따라 더 큰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중대과실 지역에서의 사고는 운전자의 과실 정도가 크다고 보고 보상을 제한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법규를 준수한 보행자가 더 적은 보상을 받는 아 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한다.
변호사가 현장에서 마주하는 현실
교통사고전문변호사로서 실제 사건을 처리하면서 이런 불합리한 경우를 수없이 접하고 있다. 의뢰인들은 똑같은 부상을 입었는데 사고 장소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보상금이 크게 차이 나 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 법규를 준수하던 피해자가 오히려 더 적은 보상을 받게 되는 상황을 설명할 때면 의뢰인들의 당황스러운 표정을 자주 본다.
실제로 수행을 한 사건을 예로 들어보겠다.
무단횡단을 한 여성이 좌회전하던 차량에 치여 경수 손상을 입었다. 12주 진단서가 나왔는데, 만일 횡단보도 사고였다면 8천만원만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결국 운전자가 기소되었는데 검찰은 공소장에 '중상해'라는 표현을 적시하였다. 따라서 피해 여성은 8천만원보다 두 배가 넘는 2억원 전액을 합의금으로 지급받았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의뢰인과 피해자들의 불신 증가
이런 약관 체계로 인해 의뢰인들과 피해자들 사이에서 보험제도에 대한 불신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보험회사가 편법을 쓰는 것 아니냐", "약관을 일부러 복잡하게 만들어 보상을 줄이려는 것 아 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특히 법규 준수 여부와 보상금이 반비례하는 현상을 보면서 "그럼 앞으로는 무단횡단을 해야 하는 것이냐"는 극단적인 반응까지 나온다. 물론 농담이지만, 이런 말이 나올 정도로 현재의 약관 체계가 상식에 어긋난다는 방증이다.
또한 보험 가입 시 이런 내용을 제대로 설명받지 못한 의뢰인들은 "사기를 당한 기분"이라고 토로하기도 한다. 보험료는 똑같이 내면서도 사고 장소에 따라 보상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사 후에 알게 되면서 느끼는 배신감이 상당하다.
약관 읽기의 중요성
이 사례는 운전자보험 가입 시 약관을 꼼꼼히 읽어야 하는 이유를 명확히 보여준다. 보험료만 비교하고 가입하다가는 정작 필요한 순간에 예상과 다른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특히 형사합의금은 교통사고 발생 시 가장 중요한 보장 중 하나다. 피해자와의 원만한 합의는 운전자의 형사처벌 수위를 크게 좌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충분한 합의금을 마련하지 못해 더 큰 법적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할 문제
교통사고전문변호사로서 이런 불합리한 약관 체계는 하루빨리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시스템은 교통법규 준수라는 기본 질서를 오히려 역행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법규를 지킨 사람이 더 불리한 대우를 받는 구조는 사회 정의에도 맞지 않는다.
보험업계도 이런 모순적인 약관 구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 법규 준수 여부와 관계없이 동일 한 상해에 대해서는 동일한 보상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식이다.
현재의 약관 체계는 사고의 성격보다는 발생 장소에 따라 보상이 달라지는 불합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는 보험의 본질적 목적인 '위험의 공정한 분산'이라는 원칙과도 맞지 않는다.
결어
운전자보험은 교통사고라는 예측 불가능한 위험으로부터 운전자를 보호하는 중요한 안전망이 다. 하지만 복잡하고 모순적인 약관으로 인해 정작 필요한 순간에 제대로 보호받지 못한다면 보험의 의미가 퇴색된다.
소비자는 현명한 선택으로, 보험업계는 합리적인 약관 개선으로, 그리고 관련 당국은 적절한 규제와 감독으로 이런 아이러니한 상황들을 하나씩 해결해나가야 할 것이다. 법규를 준수하는 선량한 시민이 더 나은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보험 시스템이 하루빨리 구축되기를 바란다.